
– 도열 스님 영전에 스님의 시조時調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저 바다를 퍼 올려서 온 하늘을 뒤덮고
먹구름을 쪼개어서 온 대지를 적신들
지구를 이고 지고서 허리춤을 출거나
해등을 꺼버리고 달등을 꺼버리며
별등도 꺼버리면 암흑천지이거늘
이 몸을 가누느라고 한 치 앞을 뜰거나
여명이 없더라면 닫힌 문을 열거며
황혼이 없더라면 열린 문을 닫으랴
정체도 없는 바람이 온 세상을 다니게
이랑 진 산산이여 냇물이 흐르도다
굴곡이 없더라면 고된 소리 내랴만
광야만 반반히 누워 깊은 잠에 들도다.
– 도열 스님
이 시는 도열스님께서 열반하시던 해에 제게 들려주신 시입니다. 이 시를 듣고 저 스스로 남겨둔 메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 바다와 같은 중생의 마음은 수증기로 올라 온 하늘을 뒤덮고/
허공에 잔뜩 머금은 부처님 마음은 은혜의 단비로 온 대지를 다시 적혀주시니/
허공과 대지를 이고 지고서 허리춤을 춘다/
해등도 꺼버리고 달등도 꺼버리며/
별등도 꺼버리면 끝내 눈감은 암흑천지이거늘/
이 한 몸을 가누느라고 한 치 앞을 아니뜬다/
여명이 밝아 옴에 닫힌 문 열 줄을 아니 태어남이요/
황혼이 저물어 감에 열린 문 닫을 줄을 아니 죽음이지만/
정해진 몸 없는 바람은 열고 닫음에 관계없이 온 세상을 유랑한다/
저 산을 오를수록 골은 더욱 깊어져 고되고 아픈 소리 내지만/
하늘에서 비추어보면 그저 논밭에 골이 진 이랑과 같음이라/
골이 깊다 어찌 슬퍼만 하랴. 그 사이로 냇물이 흘러 만물을 길러내지 않더냐/
그러나 저 수평선 넓은 광야는 말이 없어 허공과 대지, 여명과 황혼, 진리와 차별, 번뇌와 보리 위에 ‘한 일[一]’자로 누워서 말 없는 님 품속 깊은 잠에 들도다.
【임이여
보고도 못 보거늘 어디 가서 찾으라고
불러도 대답없는 그 한 님이 아니거늘
평생을 섬기느라고 이 고생을 하리까.
오니 오나 하고 가니 가나 하랴
묵묵히 계시느라 떠나가지 않으시고
세상을 굽어 살피랴 끊임없이 긴 세월
한없이 넓고 넓어 헤아릴 수 없으시고
한없이 높고 높아 바라볼 수 없으시게
세상을 두루하여서 그대 품에 삽니다.
무슨 인연 쌓고 쌓아 이렇게 뵈옵는지
자나 깨나 당신 생각 잊을 날이 없답니다
임이여 다시 한번만 거두어나 주소서.
- 도열 스님.

도열스님께서는 1941년 9월 6일, 경북 봉화군 재산면 동면리에서 최태성을 아버지로, 금수임을 어머니로 태어나셨습니다.
1955년 범어사에서 동헌東軒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셨으며 1958년 동헌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계하셨습니다. 1967년 해인사에서 자운慈雲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수계하셨으며, 1972년 9월 5일 거제도에 노자산 혜양사慧洋寺를 창건하셨습니다. 그리고 1996년 <명상>이라는 시로 [현대시조]에 등단하셨으며, 2015년 사단법인 불일종관음회를 설립하셨습니다.
혜양사慧洋寺를 창건創建하신 도열道烈스님께서는 서너살에 아버지를 잃고 아홉 살 되던 해 섣달 초엿새 한 겨울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드시다가 어머니 마저 옆으로 스르르 쓰러지시며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을 어르신 한분이 ‘수행해서 도를 통하면 니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그 어른께 인연있는 스님을 소개받아 그 스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동자승으로 출가하여 설법을 들어보니 어머니를 만난다는 건 꿈같은 일임을 아시고, 대신 ‘부처님의 진리를 통해서 세상의 등불이 되리라’한 결심을 하셨습니다.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불문佛門에 동진출가童眞出家하여 부산 범어사梵魚寺, 합천 해인사海印寺, 양산 통도사通度寺등의 사찰에서 불교과정을 수료하시고, 강원도 태백산 토굴에서 수도修道하시다가
<치문>에 있는 「설법자說法者 만불지원야滿佛之願也(설법이란 부처님의 원願을 만족케 함이라)」 라는 글을 읽으시고서,
‘부처님, 만인萬人의 복전福田이 되는 ‘대가람’의 절터를 인연맺게 하여주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운해 스님이란 분이 찾아와서 “거제도에 가면 실상사란 절이 있는데 그 곳에 가면 수도하기 좋다”고 하기에 그곳으로 거처를 옮겨 머무시던 중 ‘노자산老子山 중턱에 도선암이라는 절이 폐사廢寺가 되었다’라는 얘기를 들으시고 그곳을 다녀오시니, 그 날 밤 꿈에 여러 부처님들께서 출현하셨으며 또한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님께서 이곳 혜양사 절터에까지 스님을 인도하여주시고는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그 이튿날 꿈을 따라 그 곳을 더듬어 찾아가 산세를 바라보니, 주변에는 인가가 보이지 않고 길로는 송림松林이 울창하고 옆 계곡에는 신비로운 바위들과 폭포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뒤로 바라보니 거제도의 수봉秀峯인 노자산老子山이 우뚝 솟아 있고 앞으로는 맑은 저수지에 새들이 지저귀는 것이, ‘아, 이곳은 필경에 부처님의 대도량大道場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도열 선사께서 이곳에 혜양사를 창건하신 인연이 이와 같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대가람大伽藍’이란 「수행자가 부처님의 도道를 닦는 곳」 을 이르는말인데, 도열 스님의 원력이셨던 이 ‘대가람大伽藍’이라 함은 단지 사찰의 규모가 큰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수행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 을 ‘대가람’ 곧 큰 절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염불하고 화두를 참구하며 경전을 독송하여 한 마음 단속하는 수행법을 익혀서 자신의 꺼져가는 등불에 불을 붙이고 다시 기름을 더하여가면서 어둡고도 먼 길을 밝혀나간다면, 비로소 이 혜양사는 큰스님께서 원력을 세우시고 가슴에 품으셨던 참다운 ‘대가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대원각위가람以大圓覺為伽藍, 큰 원만한 깨달음으로써 ’대가람‘을 삼는다” 이 말씀은 대혜종고 선사의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큰 도량을 이렇게 작은 스님이 잘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도열 큰스님의 뜻을 이 수님이 잘 받들 수 있을까?‘ 염려를 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염려해야 할 것은 이 절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이 스님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이만큼 건강 할 때, 이만큼 정신이 깨끗할 때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마음이라는 이 암자를 내가 오늘 이 순간에도 잘 유지하고 있는가?‘ 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이 절 혜양사가 크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크겠습니까? 이 절은 아무리 켜봐야 그 테두리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끝을 가늠하여 알 수 있는 테두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근본 참마음을 지키는 그 일이 ’대가람을 수호하는 일‘인 불사佛事인 것이고, 그 불사는 다름 아닌 염불하고 독경하며 화두를 참구하면서 일상을 통해 진리를 늘 마주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 일을 연습하는 장소가 이 혜양사가 되길 바랍니다.
도열스님께서 쓰신 수십만 수의 시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님에 대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이성과 욕망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를 구속시키지만, 부처님과 자신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리움을 통해 스스로를 묶었던 업의 밧줄을 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도량이 존재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도열 스님의 원을 만족시키는 일[滿道烈禪師之願]이 되고, 불자님들의 원을 만족시키는 일[滿衆生之願]이 되며,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원을 만족시키는 일[滿佛之願]’이요 또한 부처님의 ‘설법說法’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원은 고통의 사슬을 풀어버리는 것이며, 부처님의 원도 또한 중생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며, 그 방법이 바로 화두이고 염불이며 간경인 수행법인 것입니다.
“어느 세월에 훈풍薰風이 돌아와서 잔설殘雪을 녹이고 꽃 피고 잎 피게 하여 결실을 맺게 하려는지 삭풍朔風에 매 맞을 뿐이로다.
오직 하나 믿는 것은 끈질긴 신념信念으로 강물이 끊이지 않고 저 바다로 들어가듯이 필경엔 대가람大伽藍을 세우리라.
이 몸이 산이 되고 내 영혼이 허공 되도 못 이룰 것 있을까. 자나깨나 이 생에 목숨 꽃 지기 전에 둥근 달로 채워보리라.”
“하루는 1초고, 한 해는 1분이며,
10년은 10분 이었더라.
왜 그리도 빠른지 번개와도 같아서,
갓 난 아기가 숨 거두며 아쉬움을 남기듯이.”
제가 좋아하는 큰스님의 <겨울밤>이라는 시에,
“상록수 솔개비에 봄빛이 청청하며
매서운 눈보라에도 아기 눈빛 푸르다.”
라는 구절이 있으니,
비록 아무리 춥고도 긴 겨울밤이라 하더라도 소나무는 그 봄빛을 잃지 않았으며, 설사 갓 나서 83년의 세월을 83분처럼 사시다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셨다 하더라도 ‘그 아이의 눈빛은 푸르렀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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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열 스님 출가 이력]
1955년: 범어사에서 동헌東軒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8년: 범어사에서 동헌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계.
1967년: 해인사에서 자운慈雲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 수계.
1972년 거제 혜양사 창건.1985년 승가대학 득도.
1996년 현대시조 등단.
2015년 사단법인 불일종관음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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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양사 연혁]
- 창건주: 도열 선사道烈禪師 [법호: 청해清海]
- 소속종단: 사단법인 불일종관음회.
– 1972년: 9월 5일, 도열스님(32세)께서 혜양사 창건.
– 1977년: 법당 아래 요사채 및 산신각 · 용왕각 · 독성각 건립.
– 1989년: 관음전 재건축, 종각 건립.
– 2008년: 5월, 금어 완호작 탱화 다섯 점 지방문화재 지정.
[아미타후불탱, 지장보살탱, 신중탱, 독성탱, 산신탱이 경상남도 지방문화재 제 451호로 지정]
-2009년 5월 21일: 무량수전 및 애경당 착공.
-2012년 2월: 용왕각, 산신각, 독성각 재건축.
-2013년 3월 26일: 무량수전, 애경당 완공.
-2015년 12월: 사단법인 불일종 관음회 설립